치매는 유전이란 말이 있던데...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으면 언젠가 나도 그 길을 걷게 될까 봐, 걱정과 불안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유전자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내 몸에 이미 정해진 코드가 있다면, 그 결과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과학의 발달은 이 운명론적 사고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후성유전학’은 DNA라는 설계도가 존재하더라도, 그 유전자가 실제로 발현될지 말지를 조절하는 또 다른 차원의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유전 정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정보가 '읽히는 방식'은 우리가 사는 환경, 습관, 감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글에서는 후성유전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후성유전적 변화가 치매 예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최신 과학 지식과 함께 쉽게 풀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후성유전학이란 무엇인가?
후성유전학은 다소 생소한 단어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개념입니다. 우리 몸에는 누구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있습니다.
이 DNA는 일종의 ‘설계도’로, 우리가 어떤 체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를 알려주죠. 하지만 이 설계도가 그대로 실행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란?
DNA 서열은 그대로지만, 그 유전자가 실제로 작동할지 말지(즉, 발현 여부)를 결정하는 후천적 조절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식습관, 수면, 운동, 스트레스, 사회적 관계 같은 생활환경이 유전자의 ON/OFF를 결정한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 말하자면, 후성유전학은 우리 유전자의 ‘스위치를 조절하는 과학’이라고 볼 수 있죠.
유전자가 있어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
정확히 그거예요. 치매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그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도록 ‘꺼져 있다면’ 치매가 발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건강해도 후성유전적 변화가 잘못 일어나면, 건강한 유전자가 비활성화되고 병이 생길 수도 있죠.
예를 들어,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쌍둥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 사람은 건강하게 장수하고, 다른 한 사람은 중년에 암에 걸렸다면, 그 차이는 유전자 외의 ‘표현 방식’ 때문입니다. 그 표현 방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환경, 스트레스, 식습관, 운동, 수면, 그리고 사회적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이 후 성적 변화를 일으키며, 유전자의 발현을 바꿉니다.
👉 쉽게 말해, 생활습관은 유전자를 직접 바꾸지 않아도, 그 유전자가 행동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후성유전학의 3대 메커니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DNA 메틸레이션(DNA Methylation)
DNA 사슬에 메틸기(CH₃)가 붙는 현상으로, 보통 유전자 발현을 억제합니다. 이 메틸화가 일어나는 위치에 따라, 특정 유전자의 별현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뇌세포 보호 유전자가 메틸화되면 그 기능이 억제되어 치매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요.
2.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
DNA는 히스톤이란 단백질에 감겨서 감춰져 있습니다. 이 히스톤에 아세틸화, 메틸화, 인산화 등 다양한 화학적 변형이 일어나면 DNA를 감고 있는 히스톤이 얼마나 '풀릴지' 결정되고, 이로 인해 유전자가 얼마나 '읽힐지'가 결정됩니다.
🔍 참고: DNA가 왜 '풀려야' 할까요?
우리 몸의 세포 안에는 약 2미터 길이의 DNA가 들어 있어요. 이 긴 실 같은 DNA는 공간이 좁은 세포핵 안에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에 감겨 돌돌 말려서 보관돼요. 이 모습은 마치 실타래처럼 감긴 책이라고 상상하시면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DNA가 단단히 감겨 있으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유전자 정보를 ‘읽을 수 없다’는 점이에요. 즉, 유전자가 감춰져 있어서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 수 없게 되는 거죠.
히스톤에 일어나는 화학적 변형(예를 들어, 아세틸화(acetylation), 메틸화(methylation), 인산화(phosphorylation) 등)은 DNA가 감긴 상태를 바꾸는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해요.
- 아세틸화가 되면: DNA가 히스톤에서 느슨하게 풀려서 유전자 정보가 잘 보이게 되고,
→ 유전자가 활발히 발현(읽힘) 됩니다. - 메틸화가 과도하면: 히스톤이 더 단단해지고,
→ 해당 유전자가 억제(읽히지 않음) 됩니다.
3. 비암호화 RNA(Non-coding RNA, 특히 miRNA 등)
단백질을 만들지는 않지만, 다른 유전자의 번역을 방해하거나 조절하는 RNA가 있어요. 이들도 유전자 발현에 큰 영향을 줍니다.
후성유전학과 치매: 어떻게 연결될까?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치매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합니다. 그중에서도 유전적 요인은 분명한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APOE ε4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죠.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APOE ε4 보유자가 치매에 걸리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후성유전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후성유전학의 3대 메커니즘 중 DNA 메틸레이션으로 치매 위험이 증가하거나 치매 진행을 막는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BDNF 유전자는 뇌세포를 재생시키고 연결을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 운동 부족 같은 환경 요인으로
BDNF 유전자가 과도하게 메틸화되면, 그 기능이 저하되고 치매 위험이 증가합니다. 이와 반대로 염증 유전자나 아밀로이드 단백질 생성 유전자는 메틸화가 잘 되면 발현이 억제되기 때문에 치매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사회적 활동, 충분한 수면 등은 치매와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보호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후성유전학은 치매 예방에 있어 '후천적 선택'이 유전적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생활습관이 유전자를 이긴다: 치매에서 후성유전학
메틸레이션: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열쇠
DNA 메틸레이션은 후성유전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정 중 하나입니다. 메틸기가 DNA의 특정 부위에 붙으면, 마치 스위치를 끄듯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됩니다. 반대로, 메틸화가 제거되면 스위치가 켜지죠. 이 메커니즘은 치매 발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경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BDNF 유전자가 과도한 메틸레이션으로 인해 제대로 발현되지 않으면, 신경세포가 손상되기 쉬운 환경이 됩니다.
👉 좋은 소식은, 이러한 메틸레이션 패턴은 생활습관의 변화로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채소 위주의 식단
- 오메가-3 지방산 섭취
-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 명상과 스트레스 관리
- 충분한 수면
이런 요소들은 메틸레이션을 조절하고, 치매를 유발하는 유전자의 활성화를 억제하거나, 보호 유전자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히스톤 단백질의 역할: 유전자의 문을 여닫다
DNA는 히스톤 단백질에 감겨 감춰져 있습니다. 이 히스톤 단백질의 구조가 느슨해지거나 조여지면, 유전자의 발현 가능성도 달라집니다. 이를 마치 문을 여는 열쇠처럼 이해할 수 있죠. 특정 영양소나 약물, 혹은 외부 환경 요인은 히스톤 구조에 영향을 미쳐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하거나 억제합니다. 이 역시 치매 예방에서 중요한 조절 장치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식단은 히스톤 아세틸화(loosening)를 촉진해, 뇌세포 회복과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을 도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후성유전학이 전하는 희망: 개인맞춤형 예방의학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다르고, 그 유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지도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는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한 체질일 수 있고, 누군가는 운동에 반응하는 유전자가 활발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개인 차이는 단순히 유전자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후성유전적 조절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즉,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누가 어떤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그 유전자가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이죠.
후성유전학 기반의 개인맞춤형 전략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후성유전학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개인에 최적화된 예방 전략을 제시할 수 있어요:
- 특정 유전자가 과도하게 메틸화되어 있거나
- 히스톤 구조가 잘못 조절되어 유전자가 꺼져 있거나
- 염증 유전자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
이런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떤 음식을 보충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 어떤 스트레스 관리법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과학적으로 도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BDNF 유전자가 메틸화되어 뇌세포 재생이 저하된 사람이 있다면 오메가-3 섭취, 유산소 운동, 수면 리듬 회복 같은 맞춤 전략을 권장할 수 있습니다. 또는 염증 유전자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항염증 식단, 스트레스 해소 활동, 사회적 관계 회복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습니다.
치매 예방에서 후성유전학이 주는 희망
치매는 완치보다는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한 질환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치매는 유전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이미 결정된 운명이라 어쩔 수 없어”라며 예방에 대한 의지를 잃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후성유전학은 그 생각을 뒤집습니다. 유전적으로 치매 위험이 높은 사람이라도, 그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면 치매 발생 자체를 늦추거나, 막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신경세포 재생과 연결성 유지에 중요한 유전자들, 예를 들어 BDNF, CREB, SIRT1 같은 유전자의 발현은 생활 습관에 따라 후 성적으로 조절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 후성유전학은 이처럼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의 스위치를 끄고, 반대로 뇌를 보호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 조절의 열쇠는 바로 당신의 일상 속 선택들에 달려 있어요.
- 오늘 어떤 음식을 먹고,
- 얼마나 몸을 움직이며,
- 충분히 쉬고 웃었는지
이 모든 작은 행동들이 쌓여 유전자 발현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것, 이것이 후성유전학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What you do today can improve all your tomorrows." – Ralph Mar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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